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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전설

금암(암소바위)
  • 구분 지역전설
  • 소재지 금암동
  • 문의처 042-840-2404

소개

금암동에 금암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옛날에는 연산군 두마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금암동 천마산 중턱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큰 바위가 한 가운데를 칼로 갈라 놓은 것과 같이 잘려져 있는데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때는 고려 중염, 외세의 수차 침략으로 국가기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승려들까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연산 천호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은 백제 신검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고 고려를 창건 함에 따라 고결의 국운을 크게 연다는 뜻의 개태사라는 절을 지어 차후 승리의 기념과 국운 융창을 빌게 하고, 산남지방 유사시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태사에 수천명의 승려를 두었다.
국력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개타사절의 세력이 강성해져 국가의 명령에 복종치 않고 승려들이 작당하여 인근 촌가를 습격 약탈하고 부녀자까지도 겁탈하는 횡포가 날로 심하였다.
이를 보다 못해 관군이 출동하여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패하니 할 수 없이 이 사실을 나라에 상소하니 왕이 이를 바로 잡고자 수차 관군으로 이 절을 치게 하였으나 패하기만 하니 승려들은 더욱 강성해져 횡포가 더욱 심하였다.

개태사 절의 횡포로 인근 주민들이 살 수가 없게 되니 왕께서 크게 근심하여 개태사를 칠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한 장수가 지원하였다. 그 장수는 최일 장군이었다. 최일 장군은 왕명을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연산 개태사에 도달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개태사를 부근에 이르러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싸움을 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하는 수 없이 퇴각하여 30여리 떨어진 노성방면에 진을 치고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개태사 뒷산에 올라 이 절의 동정을 살폈으나 안개로 인하여 절의 사정을 파악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이 사실을 왕에게 상소하였다.
어느날 최일장군이 말을 타고 개태사를 향하여 가던 중에 있었다. 때는 산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따스한 봄날이라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금암리 앞에 이르니 한 농부가 검은 암소로 논을 갈면서 "이 놈의 미련한 소야! 최일 장군 만큼이나 미련하고 어두운 소이구나"하며 논을 갈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최일 장군은 말에서 내려 논을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내가 바로 최일 장군인데 어찌해서 소를 보면 나같이 미련하다고 합니까?" 농부는 깜짝 놀라며 "아 당신이 최일 장군이십니까? 미안합니다. 장군께서는 아무리 개태사를 치려고 하나 저 천마산 중턱에 있는 암소바위가 개태사를 보호하고 있어 이 절을 치려하면 안개가 끼게 하여 절을 보호하니 암소바위를 칼로 내려 친 다음 개태사를 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농부는 온데 간데가 없이 사라졌다.
최일 장군은 신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사한 후 금암리 천마산 암소바위에 올라기니 과연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다.
최일 장군은 장검을 빼어 암소바위 한복판을 내려치니 바위가 갈라지면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최일 장군은 구대를 휘동하여 개태사에 이르니 거짓말처럼 연일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최일 장군은 일경에 개태사절 승려들을 토벌하여 인근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였다.
아 암소바위 뒤 탕건바위 있는 곳에 하(河)씨들이 피난하였다는 바위굴도 있으며 용이 바위 뒤를 통과하여 용의 흔적도 있고 사람의 시신처럼 보인다 하여 송장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도 있다.
이와같이 여러가지 바위들이 있다 하여「금암(金岩)」이라 부르고「금바위」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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