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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시로고계룡시

마을소개

엄사면 마을소개 (각 마을명을 클릭하면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래 연산군(連山郡) 식한면(食汗面) 지역으로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의 명당이 있다하여 유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송리(內松里), 광석리(光石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류동이라 하고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시의 시 승격에 따라 논산시 두마면 소속이 되었다. 후에 2003년 9월 19일 계룡시 출범에 따라 계룡시 두마면 소속으로 되었다. 2006년 3월 20일 두마면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분리되면서 엄사면 소속으로 되었다.

  • 옛날 마을 한복판에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농번기에 경작을 하다가 점심이나 새참 때에 둘러 앉아서 휴식을 할 수 있는 큰 바위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은 '너분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광석(廣石)'을 '광석(光石)'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연산군 식한면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1914년부터 '사봉리(沙峯里), '내송리(內松里)', '향한리(香汗里)', '이동(梨洞)', '화악리(花岳里)', '류동(柳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광석리'라 하고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시의 시 승격에 따라 논산시 두마면 소속이 되었다. 후에 2003년 9월 19일 계룡시 출범에 따라 계룡시 두마면 소속으로 되었다. 2006년 3월 20일 두마면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분리되면서 엄사면 소속으로 되었다.

  • 옛날부터 선비들이나 도를 닦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지대이다. 재사(才士)도 많았다고 하며 힘이 장사인 사나이들도 스스로를 달래며 일생을 살던 곳이라 하여 '도방골', '뒷방골', '도곡'이라 불렸다. 본래는 연산군 식한면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1914년부터 '장자동(壯子洞)', '이동(梨洞)' 일부를 병합하여 도곡리라고 하고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시의 시 승격에 따라 논산시 두마면 소속이 되었다. 후에 2003년 9월 19일 계룡시 출범에 따라 계룡시 두마면 소속으로 되었다. 2006년 3월 20일 두마면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분리되면서 엄사면 소속으로 되었다.

  • 조선시대 말엽에는 연산군내의 식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식한면(食汗面)은 소봉(少峯), 광석(光石), 내송(內松), 향한(香汗), 이동(梨洞), 화악(花岳), 류동(柳洞), 도곡(道谷), 장재동(壯才洞), 신동(新洞), 동대(東大), 백암(白岩), 부남(夫南), 장고산(長古山), 하장(下壯), 동촌(同村), 석계(石溪), 묵방(墨妨), 용동(龍洞), 화산(花山), 우적동(禹蹟洞), 정장(丁壯), 성재(聖才), 경운(景雲), 종평(宗坪), 송림(松林), 외송(外松), 운전(雲田), 운동(雲東)의 30개 리를 관할하였다. 본래는 연산군 식한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부터는 '외송리', '운전리', '종평리', '운동리', '내송리'의 각 일부와 두마면의 '사리' 일부를 병합하여 '향한리'라 하여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시의 시 승격에 따라 논산시 두마면 소속이 되었다. 후에 2003년 9월 19일 계룡시 출범에 따라 계룡시 두마면 소속으로 되었다. 2006년 3월 20일 두마면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분리되면서 엄사면 소속으로 되었다.

  • 옛날 이곳에 유명한 절간이 있어서 '음절' 또는 '엄사리'라 하였는데 1914년부터 '광수리(光峀里)', '엄사리' 일부와 '식한면'의 '성재동'을 병합하여 '엄사리'라 하고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시의 시 승격에 따라 논산시 두마면 소속이 되었다. 후에 2003년 9월 19일 계룡시 출범에 따라 계룡시 두마면 소속으로 되었다. 2006년 3월 20일 두마면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분리되면서 엄사면 소속으로 되었다.